장거리 비행을 다녀오면서 몰입하여 읽어 내려간 책이 있다.

바로 김애란 작가의 장편소설인 <두근두근 내 인생>이라는 책이다.

 어린 나이에 조기 노화현상이 나타나는 희귀병 조로증을 앓고있는 아름이가 1인칭 화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아름이의 부모님 대수와 미라는 고등학생 시절 소위 사고를 쳐서 아름이를 가지게 되고 

갑작스럽게 모든 환경이 바뀜을 받아들인다.

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축하를 동시에 받으며 아름이를 낳은 두 사람은 

그렇게 엄마와 아빠가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름이를 보며 행복해 하던 어느 날,

아름이가 쓰러지고 조로증이라는 병을 알게된 이후부터

어린 엄마와 아빠는 같은 나이 또래의 친구들보다 더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다.

희귀병에 대한 정보가 없던 그 시절, 지방에 살던 어린 부부가 아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부부의 삶을 오직 아름이 중심으로 바꾸는 것 외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으리라.


아름이의 시간은 남들보다 빠르게 흘렀다.

곧 엄마와 아빠가 자신을 낳았던 나이인 17살을 바라보는 아름이의 신체 나이는 80세.

이미 아름이의 육체는 해풍에 말린 생선처럼 마르고 노쇠해져갔다.

마음이 한창 싱그러울 나이지만 그 시간은 아름이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살면서 내 스스로 무언가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다는 것,

이 얼마나 억울하고 슬픈 일이던가.


'어찌보면'이라는 표현은 너무 약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가 적절하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절망적인 이 상황 속에서

슬픔보다는 '참 다행이다'라는 안도감과 심지어 살짝 유쾌함까지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바로 아름이의 엉뚱 발랄함이 아닐까 한다.

'내 상황은 왜 이렇게 절망적인가'라는 비관만을 하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을 가볍게 만들어버리는 특유의 위트를 가지고 있는 아름이.

그리고 아름이의 말 하나하나, 생각 하나하나를 

진심을 담아 밝게 받아내주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름이의 유일한 친구인 장씨 할아버지까지.

사실 눈물 콧물 주룩주룩 흘러도 모자랄 소재를 가지고 피식 미소를 지으며 읽어 내려가도록 만든

작가 특유의 스토리 전개는 

앞으로 TV나 다른 다큐멘터리 매체를 통해 나오는 많은 사람들을 접하는 나의 시선까지도 바꿔버릴 듯하다.

동정이라는 말이 얼마나 그들을 비참하게 만드는 단어인지.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런 측은한 시선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병이 누구든 얻을 수 있고, 병이 있다는 것 이외엔 나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

사실도 그러하고.


17년 동안 아름이의 병원비는 어린 아빠가 감당하기엔 버거운 무게였을 것이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어린 부모는 아름이를 포기하지 않고 

아름이를 위해 무엇이든 감내하려 했다는 것이다.

병원비로 벼랑에 내몰린 엄마와 아빠를 위해 아름이는 다큐멘터리 방송 출연을 결심하고

그 방송을 통해 한 여자아이인 서희와 메일을 주고 받게 된다.

시한부를 살고있는 아름이는 모든 사물을 특별하게 담아내는 섬세한 감성의 아이이다.

이런 아름이의 상황을 이해하는 듯한 서희 또한 오랜 투병 중이라 했다.

아름이는 만난적 없는 이 아이로 인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설렘과 위안을 느꼈고

아름이의 마음은 마치 봄을 기다리는 새싹같아 보였다.

하지만 결국 서희는 존재하지 않았다.

서희의 정체는 시나리오를 쓰고있는 36살의 작가 아저씨.

영화에 도움이 되고자 거짓 메일을 보냈던 것이다. 이런 우라질!

서희에 대한 마음이 커짐을 느낀 그는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결국 아름이의 병실에 찾아가게 되고 

담배 냄새를 품은 낯선 인기척에 아름이는 본능적으로 그 사람이 서희였음을 것을 직감한다.

그리곤 쐐기를 박듯 엄마와 방송국 PD의 이야기를 엿듣게된 아름이는 

배신감과 상실감에 빠져버린다.

아름이의 진심을 이용한 그 **는 용서할 수가 없다.

차라리 끝까지 숨기지... 차곡차곡 거짓 인연을 쌓아갈수록 상처는 더 깊어진다는 것을 몰랐을까?

스스로 마음 편하자고 나타날게 뭐람.

이 사건을 기점으로 아름이의 컨디션은 롤러코스터를 탔고

언제나 그렇듯 무심한듯 하지만 필요한 시점에 옆자리를 내어주는 친구, 장씨 할아버지에게 위로 받는다.


17년.

스스로의 생이 짧다는 걸 잘 알기에

매 순간 더 많은 생각과 더 많은 느낌을 간직하려는 것이 본능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16살이 생각하기엔 이른 것들,

자신으로 인해 잃어버린 부모님의 삶,

느껴보고 싶을 어른이 된 나,

아직 살아있는 것에 대한 실감.

아름이는 이 모든 현실을 눈물나지 않을 정도로만 담담하게 표현해낸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끊임없이 아름이의 엄마, 아빠인 미라와 대수에 대해 생각했다.

17살에 부모가 된 34살의 동갑내기 부부.

지금의 나와 비슷한 또래이기 때문일까. 

소설임을 자꾸 망각한채 '얼마나 지쳐있을지, 그간 얼마나 힘들었을지, 과연 나라면 온전히 이겨낼 수 있는 시간이었을지' 

뭔가 위로의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너무 제대로된 아들을 두셨다고 꼭 말해주고 싶었다.

아름이에게도

"넌 모를 수 있겠지만 평생동안 다른 사람들이 소망하는 걸 거의 다 가져봤단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서로 재지 않고 마음을 나누는 진짜 친구와 너를 위해 헌신해 주셨던 훌륭한 부모님,

부모님께 선물로 드리려했던 글 도전과 실패,

그리고 첫사랑의 아픔과 동시에 사람에 대한 믿음과 배신, 그를 통해 배운 인생이라는 것 말이다.

어떤 사람은 평생을 살아도 이 중에 하나도 못이루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꼭 말해주고 싶었다.


이 책을 소재로 한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이 2014년에 개봉했었다는데

만약 더 일찍 이 책을 접했었더라면 아마도 영화관에서 관람했을텐데 아쉽다.

나중에라도 꼭 챙겨봐야겠다.

소설에서 나를 감동시켰던 섬세한 문장과 구절들이 어떻게 스크린에 표현되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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