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은 아마도 제가 죽을 때까지 회자시킬 정도로

저에겐 아주 큰 사건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각까지도 많은 생각이 들게 하네요.

국내외를 막론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와 권력이 꼭 필요한 것인가라는 회의감과

해외에서 완벽하지 못한 언어 소통에서 오는 자괴감,

도움의 손을 내밀 곳이 없다는 외로움,

그리고 해외생활 자체에서 느끼게 된 이질감...

'아, 난 이 공간에서 어우러지고 발버둥을 쳐도 결국 다른 부류의 나그네일 뿐이구나.'


태국에서는 장기 체류 자격을 가진 외국인은

90일에 1번 씩 이민국에 신고를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푸켓에 몇 년을 살면서 이 신고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저희도 알지 못했거니와

아는 사람을 만나 본 적도 없습니다.

평소 궁금한 것이 있으면 계속 찾아보는 스타일이라

주변 지인이나 일을 통해 만나는 분들께 여쭤봐도 다들 제각각이었지요.

가장 큰 썰은 "워킹비자인 Non-B비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지역 이미그래이션 사무소에 가서 도장을 받는 비자가 있고,

또 하나는 3개월마다 주변국에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이미그래이션에서 도장을 받아야 하는 비자가 있다.

그런데 지역 이민국에서 도장을 받는 비자는 더 비싸다."라는 것.

저희는 다수의 의견이 정답이라 생각하고

몇 년간 3개월마다 주변국에 나갔다가 왔습니다.

주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였죠.

그런 생활을 이어가던 중에도

뭔가 시원한 답변이 궁금해서 영어권의 커뮤니티 사이트를 다 뒤져봐도

Non-B 비자가 2종류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고,

다들 지역 이민국에 가서 도장을 받는다는 이야기에

저희도 이번엔 그냥 나갔다가 오는 일정으로 하고

다음 3개월 후에는 지역 이민국에서 도장 받는 방법에 도전해보려던 참이었습니다.

타이밍도 참 기가 막히게

딱 이번에, 오늘! 일이 터지고 맙니다.

저희는 계획했던대로 당일치기 싱가포르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아침 9시 20분 비행기로 싱가포르에 갔다가

유명한 딤섬집에 들러 딤섬을 먹고,

후다닥 쇼핑을 하고 저녁 6시 30분 비행기로 푸켓에 돌아오는 일정으로요.


12시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입국하는 이미그래이션에서 신랑에게 자꾸 질문을 쏟아내는 것이 이상합니다.

여기 온 목적이 뭐냐, 얼마나 머무를거냐...를 시작으로

저희가 일행인 것을 확인하고는

ICA라는 이미그래이션 사무실로 데려갔습니다.

"너희 어디서 왔어?" - 푸켓에서 왔어.

"푸켓에 살고 있어?" - 응.

"비자가 어떻게 되는데?" - 여기 봐. 1년 짜리야.

"워크퍼밋 있어? 보여줘" - 여기 있어. 지금 연장 기간이라 노동청에서 회수해가서 

가지고 있는건 복사본이고 거기에서 카피해준 접수증도 함께 있어. 봐바.

(푸켓 이미그래이션에서 워킹비자를 요구할 때가 있어서 

업무를 대행해주는 사무실에서 미리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챙겨준 증빙서류를 보여줍니다.)

"거기에서 너 하는 일이 뭔데?" - ***이런 일을 담당하고 있어.

"너네 회사야?" - 응.

(그건 무슨 자격으로 묻는건데?! 슬슬 짜증이 올라옵니다.)

"너네 업체명이 뭐야?" - ****이야.

"그럼 너네 로고가 박힌 사진이나 뭐라도 좀 보여줘봐" - 스르륵.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보여줬습니다.)

"돌아가는 비행기 표는 몇시야?" - 이거다. 봐라.

"돈 얼마 가져왔어?" - 90불 좀 넘게.

"싱가포르는 왜 온거야?" - 사실대로 여차여차 저차저차.

"그럼 말레이시아가 더 낫지 않아? 왜 굳이 싱가포르로 왔어?" - 비행기 표가 더 싸서 왔어.

ICS 직원이 요구하는 건 모두 다 보여줬습니다.

사실 싱가포르에서의 여행과 관계없는 질문이 많아서 어처구니가 없긴 했지만

그래도 착한 학생 코스프레를 하며 성실히 답변해줍니다.

"그럼 너네 저기 안에 가서 잠깐 앉아 있어봐" - 응.

정말 잠깐인줄 알았어요.

싱가포르에서 맛있는 거 사먹겠다고 아침부터 굶고 갔는데

계속되는 웨이팅에

배는 고프고, 춥고, 화장실도 급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줄어들고 있는 시간에 똥줄이 탔죠.

1시간 정도 지나도 아무런 콜이 없습니다.

기다리다 못해 저희가 물었어요.

"우리 언제까지 기다려야해?"

돌아오는 답변은 짧은 한 마디. "기다려."

한 30여분 후 다시 바깥에 있는 직원이 다른 불법체류자 삘이 나는 사람을 룸에 집어 넣으려 문을 열었어요.

참고로 그들이 기다리고 있으라던 공간은 4평 남짓으로 2면이 통유리로 되어있고, 

한 번 들어가면 안에서는 문을 열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저희는 직원이 문을 연 틈을 타 재빨리 말을 겁니다.

"우리는 언제 나갈 수 있어?"

 - "기다려."

"언제까지?"

- "지금 (돌아가는)티켓 확인 중이야."

"화장실 다녀와도 돼?"

- "(화장실 가고 싶다는게)너야? 나와"

헐...!

화장실 가는 신랑을 밀착마크하며, 직원이 따라갑니다.

신랑이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와서 하는 말이

볼일 보는 것까지 지켜보더랍니다.

기분이 쎄~한 것이 이상합니다.

왠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구금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오후 2시가 지났습니다.

이미그래이션에 도착하기 전 신랑은 다행이 핸드폰에 창이공항 프리 와이파이 3시간짜리를 연결해놓은 상태.

스카이프로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까 직원은 영사과로 통화를 넘겼습니다.

영사과의 여직원 목소리가 들립니다.

"무슨 일이세요?"

...

그간의 일을 다시 설명합니다.

우리의 요청은 이 것이었습니다.

"입국 거부는 받아들일게. 우리는 죄를 지은게 아니니까 구금은 풀어달라."

비행기를 타기 전 공항내 식당에서 밥이라도 먹고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수화기 넘어 여직원의 답변은 '자기네는 출입국 관리소 어디에 구금된건지 확인할 방법도 없고,

우리가 그쪽에 뭔가 요청할 권한이 없다. 그들의 재량으로 일을 처리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름을 알려달라.'

뚝.

예상은 했지만 지극히 사무적인... 적당한 선에서 등을 돌리는 태도.

해외 대사관이나 영사관의 업무처리 방식은 여기 저기에서 많이 들었던지라

뭐, 별로 실망스럽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화를 끊는 무심한 소리가 어찌나 매정하게 들리던지...

안되면 우리가 해결해보지 뭐.

신랑이 먼저 통유리문을 탕탕 두드렸습니다.

아무도 대꾸가 없습니다.

저도 함께 통유리문을 탕탕 두드렸습니다.

직원들과 여러 번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도 우리에게 오지 않습니다.

아... 곧 연결시킨 와이파이가 끊길 시간입니다.

장난이 아니다.

이마저 끊기면 우리는 완전한 구금상태가 된다.

속는 셈 치고 다시 한 번 대사관에 전화를 넣어보자!

"네, 저 아까 이미그래이션에 구금되었다고 전화드렸던 사람인데요."

- "아, 네. 영사과로 연결시켜드릴게요."

이렇게 연결된 영사과에서 전화를 받은 직원은 아까 그 여직원이 아닌 남직원입니다.

다시 한 번, 상황에 대해 어필하고

한 단계 낮아진 우리의 요구사항을 말합니다.

"화장실에 가고싶다. 배가 고프고 너무 춥다." 정도의 문제적 상황만을 설명하는 식으로.

말이 '아' 다르고 '어'다르다고

이 남직원의 반응은 뭔가 적극적이고 능동적입니다.

영사관에서 출입국관리소의 권한을 막을 권리는 없지만

이름을 알려주면 최대한 도움을 드려보겠다.

이 춥고 숨 막히는(4평 정도의 공간에 이미 10명이 넘는 입국거부자들로 몇몇은 자리가 없어 서있는 상황) 공간에서

한 줄기의 희망이었습니다.

통화를 마치자 마자 와이파이는 끊겼고,

우리는 정말 제대로 갇혔습니다.

우리와 함께 그 공간에 있던 사람들 중 8명 이상이 흑인,

북아시아인은 우리 2명,

그리고 나머지 3명은 인도나 중동 사람들,

갇혀있던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이 들락달락 했고,

신랑과 나, 이렇게 우리 둘만이 고정멤버였습니다.

백인은 단 1명도 없었습니다.

그냥 통과...

뭔가 씁쓸한 기분이었어요.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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